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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물시계 573년 만에 돌렸다 [중앙일보]
남문현 건국대 교수 `복원 23년` 결실
물통 제자리 찾는 연구만 15년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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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남문현(65.전기공학) 교수는 21일 한복을 차려 입고 서울 세종로 고궁박물관에 나타났다. 조선시대 표준시계인 보루각(報漏閣) 자격루(自擊漏)를 20년이 넘는 연구 끝에 복원해 시연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날 남 교수가 이끄는 건국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완성한 자격루 복원품을 공개했다. 길이와 높이가 각 6m에 너비가 2m로 박물관 지하 전시실 한 방을 채우는 거대한 규모다.

물이 고였다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쇠구슬을 굴려 인형들이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게 한 당시 원리에 따라 복원된 자격루는 이날 오전 11시 작동을 시작했다.


남 교수가 자격루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4년, 미국 버클리대 지도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동제어장치 전공자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제어장치에 관심 가질 만하지 않나요"라고 그는 되물었다.

문헌 자료는 '세종실록' 65권 보루각기. 하지만 설계도도 없는 2000자짜리 문서만으로 원리를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표현도 모호했다. 자동 시보장치를 움직이는 두 가지 구슬의 규격이 중요한데 문헌엔 그저 "작은 것은 탄알만 하고 큰 구슬은 계란만 하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남 교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토종닭의 달걀 크기 측정이었다. 또 당대의 물시계들을 보러 중국.일본 등지로 숱하게 다녔다.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은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 세종 16년(1434) 장영실이 만든 것을 중종 31년(1536) 개량한 것이다. 현재 물받이 원통과 물통만 남아 있다. 창경궁에 있던 것을 1911년 무렵 일본인 학자들이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배열이 엉망이 됐다. 이 물통의 제자리를 찾는 연구에만 15년이 걸렸다.

"알고 있는 현대적 원리의 회로를 지우고, 거꾸로 더듬어 올라가면서 옛날 방식의 기계 논리를 체득했습니다."

97년이 돼서야 문화재청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 설계 작업이 시작됐다.

 2004년 12월부터 1년간 제작에 들어갔다. 전통 단청장, 유기장, 옻칠장 등 무형문화재급 장인과 기계공학자 등 '선수' 32명으로 팀을 꾸렸다. 10여 년간 연구한 설계도는 재현 과정에서 무수히 변경됐다. 이렇게 해서 2005년 12월, 자격루 1차 복원에 성공했다.

남은 것은 정밀도를 높이는 일. 물시계가 정확히 작동하려면 물 관리가 필수다. 조선시대에도 자격루 옆에 난방장치를 뒀을 정도로 항온 항습에 주의했다.

내년 2월 정년 퇴임하는 노학자의 집념은 그침이 없다.

"이번에 복원한 보루각 자격루 외에 자격루는 하나 더 있었습니다. 흠경각 자격루입니다. 이 복원도 끝나야 비로소 자격루를 완전히 복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격루(自擊漏)=물이 고이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는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됐다. 세종 16년(1434) 장영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라비아식 자동 시보장치를 물시계와 결합한 보루각 자격루를 만들었다.

쥐.소 등 12지신상이 두 시간마다 창 밖으로 나와 시간을 알린다. 밤에는 또 다른 인형이 나와 북과 징을 울렸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현재 남아 있는 자격루(국보 제 229호)의 일부분은 중종 31년(1536) 설치돼 1895년까지 표준시계로 사용되던 것이다.


권근영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최첨단 기술로도 23년 걸렸다”…자격루 복원한 남문현교수
입력: 2007년 11월 21일 18:37:50
 

“꼭 23년 걸렸군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1984년이었다. 자동제어가 전공인 남문현 건국대 교수(65)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동제어 기술이 당연히 있을 줄 믿고 ‘스스로 자(自)자’가 들어간 기록과 유물에 관심을 가졌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자격루(自擊漏)였다. 남문현 교수는 그때부터 1434년 조선 세종의 지시로 장영실이 발명한 자격루 복원에 매진했고 만든 지 573년 만인 20일, 완전복원에 성공했다.

 자격루는 물시계이면서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표준시계. 한국과학사의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자격루의 기본원리는 동아시아 전통의 유압식 물시계와 크고 작은 구슬을 이용한 아라비아식의 자격장치가 조합된 시스템이에요.

장영실은 중국 및 아라비아 시계 기술을 접목,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사이버 시스템을 발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시계였던 셈이죠.”

하지만 장영실의 자격루는 소실됐고, 현존하는 자격루(국보 229호)는 1536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그것도 1만원권에 도안된 자격루는 물항아리 등 일부 부품뿐이다.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토대로 철저한 고증작업을 펼쳤는데, 이번 복원작업에 모두 30여명의 내로라하는 학자 및 장인들과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됐어요.

 그러니 570여년 전인 조선초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자격루는 물시계(아날로그)의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를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조선초에 이미 빼어난 자동제어시스템을 구축한 것인데, 만약 쇠구슬의 크기가 1㎜만 달라도 제대로 된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현전했던 자격루의 물시계 항아리 배열방식이 일본학자들에 의해 크게 잘못됐는데, 이번 복원과정에서 바로잡았습니다. 대파수호-중파수호-소파수호 순(1열3단)으로….”

자격루에는 백성을 끔찍하게 여겼던 세종의 경천애민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은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면 중벌을 면치 못하니 장영실에게 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세종실록 보루각기)는 기록에서 임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자격루는 12지시(十二支時·2시간)마다 종이 한번씩 울리면서 동시에 그 시에 해당하는 십이지신 인형이 시간을 알리고(시기·時機), 밤(오후 7시부터 새벽 3시 무렵)까지는 북과 징을 울리도록(경점시보기구) 설계됐다.


자격루의 시보신호는 광화문을 거쳐 운종가 종루로 전해져서 인정과 파루시각을 알리는 데 사용됐다.

 남교수는 “자동시보인형이 주는 신비감과 경외감 또한 대단했을 것”이라면서 “신묘한 재주를 지닌 왕실이라는 관념도 심어주었으니 통치의 도구로도 활용된 셈”이라고 전했다.

〈글 이기환 선임기자·사진 박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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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명초 :
《“정조는 음악적 재능과 식견에서 세종을 능가한 군주였습니다.” 조선 후기 음악사를 개척해 온 송지원(사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정조의 음악정책’(태학사)을 펴냈다. 서울대 국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1992∼97년 KBS 국악 프로그램 작가와 진행자로 활약했던 그가 학계로 돌아간 뒤 내놓은 첫 단행본이다.》

2002년부터 계간 ‘문헌과 해석’에서 우리 역사 음악가들의 사연을 발굴해 맛깔 난 글 솜씨로 소개한 ‘음악가 이야기’의 필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겐 의외로 딱딱한 이론서지만 그 내공은 만만치 않다.


그는 이 책에서 TV 드라마 ‘이산’에서 문무겸전의 멋쟁이로 나오는 정조가 음악적 재능에 있어서도 세종을 능가한 조선조 최고의 악왕()이었다고 주장했다.

세종은 한국 전통의 제례악인 향악(), 삼국시대 이후 중국의 제례악인 당악(), 중국 고대 제례악인 아악()의 악보와 악기 악곡을 정리하고 악서()를 편찬했다. 또한 박연을 시켜 음률을 통일하고 편경과 편종 등을 새로 제조케 했는가 하면 새로운 악보로서 정간보 등을 창안했다. 이 때문에 세종에 비견될 조선조 왕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송 연구원은 이런 통념을 깨고 “정조가 이룬 음악 업적은 양과 질에서 세종을 뛰어넘는다”며 “세종이 문물정비기 왕으로서 독창성을 발휘했다면 정조는 문물완비기의 왕답게 유교 예악정치의 완성을 꿈꿨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세종이 모차르트였다면 정조는 베토벤이었던 셈이다.

세종에게 박연이 있었다면 정조에겐 서명응이 있었다. 정조는 세자 때 스승이었던 서명응을 특별히 발탁해 음악 이론서로서 ‘시악화성’과 ‘시악묘계’ 그리고 국가전례 전반에 쓰이는 악장 모음집인 ‘국조시악’ 등을 편찬케 하고 직접 그 서문을 썼다.


정조는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실린 ‘악통’을 직접 썼다. 또한 그는 ‘춘관통고’와 같은 대규모 국가전례서에서 ‘예로써 다스리고 악으로써 조화를 꾀한다’는 예악사상을 새롭게 고취했는가 하면 규장각에서 자신이 직접 육성한 ‘초계문신’을 ‘지악지신()’으로 키우기 위해 특히 악론()을 강조했다.

정조는 비단 이론에만 밝았던 것이 아니었다. 세종이 악공들도 구별하지 못하는 음의 오차를 집어낼 정도의 절대음감을 가졌다면 정조는 궐내 악공과 악생을 전원 소집해 개별 연주와 합주 때 문제점을 일일이 집어내는 ‘카리스마의 음감’을 과시했다.

송 연구원은 이런 정조가 문체반정()에 버금가는 악풍반정()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문체반정은 정조가 고답적 한문 문체를 벗어나 개성을 추구한 박지원과 이옥 등의 문체를 잡문()이라 비판하며 순정고문()으로의 회복을 주창한 것을 말한다.

송 연구원은 정조가 예악정치의 이상이 조선에서 실현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예에 비해 악의 조화가 무너졌다는 인식 아래 빠른 음악을 선호하는 당시 사람들의 음악 성향을 거부하고 완만한 고악()의 회복을 기도했다는 점에서 이를 ‘악풍반정’이라 이름 붙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선 문체반정이나 악풍반정이 모두 개성을 억누르는 반동적 행태로 비치지만 최고 통치자의 관점에선 엄청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안간힘이 아니었을까요. 다양한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음악처럼 예악정치의 실현을 꿈꾸는 통치자와 자신의 음악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천민 출신의 악공들이 어우러져 당대의 역사가 빚어진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권재현 기자 <U>confetti@donga.com</U>


Posted by 무명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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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케이프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다양한 효과를 편리하게 주고자 하는 사용자, 사용자가 직접 사진 수정 작업 후 포토프린터로 인쇄 하고자 하는 사용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관리하고 편집하기를 원하는 사용자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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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법
1. 다운로드한 파일을 실행해 설치를 진행합니다. 삭제는 제어판의 프로그램 추가/제거를 이용합니다.
 
2. 추가적으로 설치할 구성요소를 선택하거나 설치 형태를 지정하여 설치합니다.
 
3. 설치할 폴더를 선택(잘 모르면 기본 경로로 설치)하고 [설치] 버튼을 눌러 설치를 마무리 합니다.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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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2. 쉘 컨텍스트 메뉴
썸네일 이미지에서는 쉘 컨텍스트 메뉴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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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의 트리에서 편집할 이미지가 있는 폴더를 선택하면 하단의 썸네일 이미지 뷰어에 썸네일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편집할 이미지를 선택하여 계속적인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작업 창을 크게 하려면 트리 및 썸네일 이미지 뷰어 창을 최소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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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2. 사진편집 -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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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3. 개체
사진에 다양한 이미지를 적용하고 글을 입력하여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5. 페이지
사전에 정의된 페이지 양식을 선택하고, 큰 팬에서 빈 셀을 클릭하면 사진 추가 창에서 원하는 사진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페이지 양식에 맞춰 사진을 추가하면 자신만의 사진 모음을 만들 수 있어 유용합니다.
 
6. 이어붙이기
이어붙이기 탭을 이용하면 여러 장의 사진을 가로 혹은 세로, 바둑판 모양으로 붙일 수 있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모아 인화할 때 유용한 기능입니다.
사진 추가 후 [사진편집하러 가기] 버튼을 누르면 사진편집 탭으로 전환되어 사진 하단의 기능탭과 버튼을 이용하여 다양한 효과를 주거나 편집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상단의 썸네일 이미지를 돌려가며 선택하여 계속적인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Step 1. 밑으로/옆으로
사진 정렬 방식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밑 또는 옆으로 정렬이 가능하고 사진 크기를 조절합니다.
 
Step 2. 바둑판
바둑판 모양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붙여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7. GIF 애니메이션
여러 장을 이미지를 추가하여 GIF 애니메이션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저장이 가능합니다. [프레임 추가] 버튼을 눌러 GIF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만들 이미지를 추가한 후 웹 브라우저에서 미리보기 혹은 gif 파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8. 인쇄
Step 1. 사진 추가
[사진 추가] 버튼을 눌러 사진을 추가합니다.
 
Step 2. 증명사진 인쇄
증명사진 인쇄 방법을 지정합니다.
 
Step 3. 썸네일 인쇄
썸네일 인쇄 방법을 지정합니다. 모든 인쇄 설정이 완료되면 [인쇄] 버튼을 눌러 인쇄를 하거나 하단의 [사진 인화] 버튼을 이용하여 인화를 할 수 있습니다.
 
9. 색상검출
포토스케이프 메인 탭인 포토스케이프 탭에서는 색상검출이라는 색상코드 출력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1. 포토스케이프 탭에서 [색상검출] 버튼을 누릅니다.
  2. 색상 검출 창이 나오면,
  3. 스포이드를 클릭한 채로 색상 코드를 추출할 곳으로 이동하여 마우스 버튼을 놓으면 됩니다. 16진수 HEX 코드와 RGB 값으로 출력이 되므로 사용 목적에 따라 코드를 선택하여 사용하면 됩니다. HEX 값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코드가 복사됩니다.
 
이 밖에 사진 파일 일괄 이름 변환 기능(이름변환), RAW -> JPG 이미지 파일로 일괄 변환 기능(RAW변환) 등과 같은 추가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 화면캡쳐
화면캡쳐 기능을 이용하여 모니터 상에 보이는 것을 이미지로 캡쳐할 수 있습니다. 포토스케이프 탭에서 [화면캡쳐] 버튼을 누르면 화면캡쳐 대화상자가 나타납니다.
캡쳐 화면 처리 속성을 설정한 뒤, 캡쳐 목적에 맞는 버튼을 누르면 캡쳐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됩니다.
 
11. 화면캡쳐 - 사진편집 탭에서 열기
캡쳐 화면 처리를 '사진편집 탭에서 열기'로 설정한 경우, 캡쳐한 대상을 포토스케이프의 사진편집 탭에서 보여줍니다. 적절한 편집작업을 거쳐 저장하면 됩니다.
 
12. 포토스케이프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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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명초 :

죽음은 언제나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특히 억울하게 죽은 자의 시체는 산 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누군가 이 말을 들어야 한다.
누가 죽였는가. 왜 죽었는가. 어떻게 죽었는가. 그렇다면 이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MBC드라마넷과 MBC every1 채널에서 방영 중인 <별순검>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별순검>의 탄생과 현재

설 특집으로 방송됐던 <추리다큐 별순검>(왼쪽)과 현재의 <별순검>.


사실 <별순검>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 교양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팀에 속한 황혜령 작가의 아이디어를
김흥동, 이승영 PD가 수용한 것이 2005년 <추리다큐 별순검>의 시초였다.
 ‘개편을 맞아 독특하고 재미있는 코너’를 위해 작성된 이 기획안은 같은 해 MBC의 가을 개편을 앞두고
파일럿으로 제작되어 추석특집극으로 방영되었고, 이후 김흥동, 김병수 감독의 공동연출로
<추리다큐 별순검>이라는 제목으로 정규 편성되었지만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2006년 1월 <추리다큐 별순검>은 설 특집 2부작 단막극으로 제작되어 방영되었고
2007년 10월 13일, 2년 전의 제작진들이 거의 그대로 모인 드라마 <별순검>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MBC를 떠나 프리랜서로 옐로우엔터테인먼트에서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연출한 김흥동 감독을 제외한 제작진들-이승영, 김병수 감독과 황혜령, 양진아 작가의 라인업에 정윤정 작가가 추가된 <별순검>의 핵심 제작진-이 구성된 것은 2007년 초였다.


새롭게 시작된 <별순검>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는 드물게 해외의 시즌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프로그램으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런 형식적인 변화는 <추리다큐 별순검>이 드라마타이즈드 프로그램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당시 예능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형식을 고의로 삽입하며 표현의 한계를 경험한 제작진들로서는
드라마로 정체성이 바뀐 <별순검>을 통해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수사물이라는 장르 정체성과 케이블 채널의 자체제작 드라마라는 특성이야말로 <별순검>을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그 어떤 것의 아류도 아니다, <별순검>이 획득한 고유한 세계

19세기 초반, 급변하는 조선의 모습 또한 <별순검>에 오롯이 담겨있다.


<별순검>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다.
시대적으로는 19세기 초반, 한반도가 국제 정세에 휘말리기 직전의 시대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아관파천으로 어수선한 정국 아래 있던 시기였다.
서양의 문물이 급속도로 들이닥치며 체제와 제도에 근대적인 변화가 위아래에서 벌어지던,
그야말로 격동적인 힘이 이쪽 저쪽에서 터져 나오던 시대가 바로 <별순검>의 무대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사료가 없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야 말로 한국사의 ‘잃어버린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순검>은 바로 그 ‘잃어버린 시간’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풍속도이기도 하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 드라마이기도 하며, 동시에 살인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외래 문물과 전통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치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 덕분에 한 상인의 죽음 이면에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전기에 의한 근대적 살인도 가능하고, 백정과 평민 사이의 계급적 갈등을 보여주거나 당시 여성들이 겪은 시대적 비극의 묘사도 가능해졌다.
이런 특징이야말로 <별순검>이 획득한 고유한 세계다.

<별순검>은 <CSI>를 연상케하지만 조선이라는 시간에 알맞게 변용시켜 또다른 재미를 준다.


같은 맥락으로 <별순검>은 미국의 <CSI>를 가장 한국적으로 훌륭하게 벤치마킹한 작품이다.
특히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별순검은 <CSI>와 많은 유사함을 가지며
강승조(류승룡) 대장을 그리섬 반장과 비교하거나, 여진(박효주)을 캐서린이나 새라와 비교하게 만들지만,
이보다 중요한 미덕은 이런 분명한 캐릭터들이 감정이 아닌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조선 시대 법의학서인 <신주무원록>을 통해 제시되는 검증 사례들은 <CSI>의 현대적인 과학수사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사극’이라는 한계 안에서 경이로움마저 던져준다.
고초반응으로부터 루미놀 기법을 연상시키는 순간, 시청자들은 <별순검>이 <CSI>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극복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시간적 배경이 현대에서 근대로 이동하며 <별순검>은 <CSI>보다 다층적인 구성이 가능해졌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별순검>이 어떻게 <CSI>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점이다.


<별순검>이 상징하는 한국 방송환경의 변화


최근 MBC 프로덕션은 <별순검>의 다음 시즌 제작을 결정했다.
계획대로라면 <별순검>은 2008년 여름에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바로 공중파가 아니라 케이블 제작 환경에서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시즌2를 자연스럽게 선보인 tvN의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별순검>의 다음 시즌 제작 결정은 그 시장성을 검증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케이블 환경은 시청률 1%에 목을 매는 치열한 생존의 이전투구장이지만, 동시에 공중파보다는 상대적으로 제작과 편성에 자유로울 수 있다.
<별순검> 역시 케이블 채널, 그것도 MBC 프로덕션이라는 공중파 채널에 기반한 케이블 채널의 자체 제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은 셈이다.
일단 표현의 수위 자체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각종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별순검>으로서는 보다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편성의 강박증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유연성은 <별순검>의 회당 러닝타임을 70분 안팎으로 만들어 개연성과 반전이라는 장르적 특징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별순검>은 현재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다.
이 드라마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로, 2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열성적인 팬들과 제작진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2005년에 내외적으로 거부당했던 장르적 감수성을 2007년의 방송환경은 수용할 준비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순검>의 성과는 현재 한국 케이블 TV의 환경이 1년, 혹은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시장과 환경의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지금의 시청자들은 한국의 TV 방송이 가장 다이나믹하게 분화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별순검>이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환경적 조건들 이전에 <별순검>이 가진 드라마적 완성도를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라도 탄탄하게 짜여진 좋은 이야기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별순검>의 가장 큰 미덕이자 성과다.


☞ 이어지는기사
- <별순검>│<별순검>의 세계, <별순검>의 시대 (1 / 5)
- <별순검>│“<별순검>은 수사물을 빙자한 인간 드라마다” (2 / 5)
- <별순검>│“제대로 파 보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3 / 5)
- <별순검>│죽음 보다 더 뜨거운 현장 (4 / 5)
- <별순검>│별순검 101, 알고 보면 더 재밌다 (5 / 5)


(글) 차우진 lazicat@t-fac.com

(매거진t 블로그) 서교동 t 팩토리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magazinet)

Posted by 무명초 :

1739년(영조 15) 관서 암행어사 이성효가 삭주부사 이만유의 불법을 캐낸 후 창고를 봉하려 할 때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만유가 칼을 뽑아들고 이성효에게 달려들었다.
"길거리에서 밤을 타고 들어온 자는 필시 가짜 어사일 것이니, 내가 단칼에 너를 죽이리라."
목숨이 위태로워진 어사 이성효는 곧바로 마루 위로 올라가 품안의 마패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만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 암행어사 마패였으므로 이만유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네가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아느냐? 이것을 보고 마음대로 해보아라."
이성효의 추상같은 외침에 이만유는 그만 황망하여 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1795년(정조 19) 호남 암행어사 이희갑이 출도를 하지 않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이 때 왕이 크게 노했다.
"암행어사가 출도를 하지 않은 채 남몰래 갔다가 남몰래 돌아왔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시체가 구렁에 뒹굴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출도를 하지 않은 탓에 또 다시 새롭게 조사를 벌이는 일이 있게까지 했다. 물론 임무가 생소한 탓도 있겠으나, 경솔하게 행동했다고 하겠다. 처음과 두 번째 올린 계사의 체례도 모두 착오를 범했는데, 그 잘못된 것이 임금의 명만 욕되게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어사 이희갑의 이후 관직 진출을 막도록 하라."
(정조 실록 19년 5월 22일)


1763년(영조 39) 3월 3일에 호남 암행어사 홍양한이 전라도로 떠났다. 4월 9일 태인현에 도착해 쌀 1천 석 불법 사실을 알았고, 출도 직전에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사망했다. 이 때 사람들은 그가 독살된 것이라고 의심했다. 대사간 한사직이 4월 23일 어사 홍양한의 사인을 밝힐 것을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며칠 전에 어사 홍양한이 태인현에 당도하여 아전이 사사로이 관청의 재물을 사용한 것이 많게는 수천 석이라는 말을 듣고 여러 방면으로 조사하여 출두하고 죄를 다스리려고 하던 즈음 점심밥을 먹고 갑자기 죽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전해지는 말이 낭자합니다. 청컨데 형조에 지시하시어 어사를 데리고 간 서리를 잡아 가두어 신문케 하고, 태인의 객점 주인도 엄하게 문초하소서."
왕이 이 말을 옳게 여기고 형조에 서리와 어사를 대동한 수졸들을 심문하게 했다. 그랬더니 '어사는 단지 국밥 몇 수저 먹었을 뿐이고 나머지는 수졸이 먹었습니다'고 했다. 이에 왕이 모두 풀어주었다.
그런데 홍양한이 호남 암행어사로 객점에서 죽을 때 겸인 김석준이 곁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홍양한의 아들 홍낙교가 김석준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음을 의심하며 사헌부에 고소했다. 그러나 끝내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 때 영조는 "김석준이 홍양한의 죽음을 보고도 버리고 먼저 돌아온 것은 죄를 줄만 하다"며 김석준을 귀양보냈다.


1774(영조 50) 제주 암행어사 홍상성은 제주로 내려가던 도중 기생을 사귀게 되었는데, 제주에까지 기생을 데리고 갔다. 이에 대사간 임희중이 왕에게 고하기를
"제주 어사 홍상성이 길에 만난 기생과 함께 배를 탔습니다. 어사의 신분에서 더욱 엄격하고 삼가야 하는데, 이런 일은 일찍이 들어본 적 없습니다. 청컨데 관직을 삭탈하소서."
왕은 홍상성의 이름을 서종안에서 삭제하고, 해남편으로 귀양보냈다. 그런데 한 달 반이 넘도록 홍상성이 제주를 떠나지 않았다. 마침 제주 사람이 올라왔기에 어사가 바다를 건넜는지 물었더니 기생을 데리고 아직 제주에 머물러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사헌 송형중과 대사간 박사해 등이 아뢰기를
"홍상성이 기생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간 것은 고금에 없던 해괴한 일이므로 마땅히 처분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 아직도 기생과 지내고 있다고 하니 방자하고 거리낌 없음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청컨데 엄중히 추국하소서."
(영조 실록 50년 12월 7일)
화가 난 영조는 제주 어사 홍상성을 급히 잡아오도록 명했고, 홍상성은 국문을 당한 후 변방으로 쫓겨났다.


1781년(정조 5) 관서 암행어사 유의는 임무 수행 중 여러 차례 서계를 올렸는데, 그 내용이 매우 엉망이었다. 이에 정조는 그의 보고서 내용이 부실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사신이 왕명을 받들면서 어느 것인들 중요하지 않겠는가마는 암행어사는 더욱 각별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근엄하게 하고, 정밀하게 해야 조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어사 유의의 서계를 보면 아뢴 것이 모두 일곱 번이나, 조리가 없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수령의 치적에 대한 것은 어불성설이고, 곡포에 관한 내용도 엉망이다. 보고 형식이 격식에 어긋나고 혼란스러우니 어찌 암행어사를 파견한 본 뜻이 이루어지겠는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우니 해당 어사를 처벌토록 하라." (정조 실록 5년 1월 11일)
그런데 조사 결과 유의의 부실한 보고서는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려다가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정조는 유의의 직첩을 돌려주고, 실록청의 낭관으로 임명했다. 몇 달 후 영조 실록이 완성되었는데, 이 때 유의는 가자의 은전을 입었고, 그 후 홍주목사로 승진되었다.


정조 치세 때, 경상우도 암행어사 이서구가 상주 목사 심기태의 불법행위를 적발해 처벌했다. 그런데 경상 감사 이조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암행어사에게 진술한 사람을 가두고 문초했다. 이에 사헌부 장령 최경악이 이조원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에 의하면 이조원이 어사에게 사실을 말한 자들을 옥에 가두고 보복했다고 한다. 이 보고를 들은 정조는 이조원을 철처하게 조사하라고 명했다.


1793년(정조 17) 호서 암행어사 윤노동이 해당 감찰 지역 외 다른 지역을 탐문하고, 더욱이 종적을 비밀로 하라는 규정까지 어기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같은 호서 암행어사들은 서로를 가짜라고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고, 윤노동은 파직되었다. 또 암행어사 이조원은 자신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을 탐문했다가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한 정조의 처사는 다음과 같았다.
"어사에게 내리는 봉서는 그 자체가 지극히 엄중한 것이다. 만약 내려가는 도중 근처 고을을 탐색하라는 말이 없으면 타지역 수령들을 감히 논박할 수 없는데, 이번 어사들의 행사에서 이조원이 봉서를 잘못 보았다는 말은 지극히 소홀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윤노동도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담당 이외의 고을을 감히 제 마음대로 선택하여 산간이나 연해 고을을 광범위하게 다녔고, 심지어는 다른 어사가 이미 출도한 지역까지 들어갔으니 받든 사명을 크게 그르쳤다고 하겠다. 더구나 종적을 숨기고 다녀야 하는 신분으로 관첩에 서명까지 하여 보낸 것은 예전에 듣지 못한 일이다. 여러가지 일들이 경솔했으니 이후 관직 진출을 막도록 한다." (정조 실록 17년 6월 13일)


위에 이어 이조원 이야기 계속 ...


이조원이 말하기를
"신이 돌아오는 길에 신창에 들렀는데, 어떤 사람이 신의 행색을 엿보고 빠른 걸음으로 뒤를 밟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저는 재종형 이홍원의 온양 임지로 가서 그들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홍주 진영의 건장한 장교와 사나운 졸개 10명이 그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신의 재종형이 찾아온 연유를 물으니, 장교가 은밀하게 말하기를 '홍주 영장이 가짜 어사이니 속히 잡아오라 했다. 그 자가 아까 이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체포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신의 재종형이 말하기를 '그는 나의 친족이고, 가짜 어사가 아니니 속히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홍주 진영의 장교가 계속 감시하며 저를 체포하려 했습니다.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사태를 파악하기 어려워 그 자리에서 출도하여 장교를 붙잡고 홍주 영장에게 공문을 보내 이리로 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에 갑자기 아산의 장교 30명이 본군에 들이닥쳐 말하기를 '어사가 해당 고을에 출도하여 우리들을 내보내면서 온양에 출도한 가짜 어사를 잡아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더욱 놀랐고, 또 생각해 보니 아산에 출도한 어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기가 어려웠고, 혹시라도 간악한 백성이 이런 일을 저질러놓고 종적이 탄로날까 두려워서 일부러 아전과 장교를 흩어지게 해놓고 그들이 비운 사이 틈타 도망치려는 것인가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만나 따져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후 신이 그곳으로 가보니 그쪽에서도 이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말을 세우고 촛불을 비추어 보니 서로 명을 받들었던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신의 처사가 경솔했음을 책망하니, 그가 말하기를 '혼자 이곳을 모두 담당한 것으로 알았기에 출도한 사람이 가짜라고 의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의심을 풀었으므로 말을 돌려 되돌아왔는데, 홍주 영장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꾸짖었더니 겁을 먹고 꾸며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신이 그 때에 만일 길에서 서로 만났더라면 봉변을 면치 못했을 것인데, 다행히 왕명을 욕되게 하는 일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영장이 경솔하게 일을 저지른 것은 잘못된 일이니 홍주 영장 이현택을 처벌하소서." (정조 실록 17년 5월 27일)
이에 정조는 이조원을 가짜 어사로 오인한 홍주 영장 이현택의 관직을 삭탈하고, 아산 현감 윤광심도 심문하도록 했다.

1727년(영조 3) 박문수가 처음 암행어사로 천거되었다. 이 때 호남과 영남에 흉년이 들어 급히 어사를 파견하려 했는데, 박문수가 천거되자, 영조는 나이가 젊고, 수령을 역임한 적이 없다며(영조는 어사가 수령에게 휘둘리는 폐해를 막기 위해 수령을 거친 자를 어사로 삼았다고 함) 반대했다. 그러나 좌의정 조태억은 '박문수는 사리에 두루 통달하고 시무에 밝다'며 거듭 추천했다고 한다.


정약용은 1794년(정조 18) 경기도 적성, 마전, 연천, 삭녕의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정조의 명을 받아 일을 마친 후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전 연천 현감 김양직은 마음대로 환곡을 나누어 주고, 재결을 도둑질해 먹었으니 그 죄를 유사에게 조사시켜야겠습니다. 전 삭녕 군수 강명길은 화전에 지나치게 세를 물리고 향임들에게 뇌물을 받았으니 비록 체차되어 옮긴 지 오래되었으나 죄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조 실록 18년 11월 16일)
정약용의 보고서는 좌의정 김이소에 의해 보고되었고, 정조는 즉각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정약용과 함께 암행어사로 파견된 사람은 박윤수, 홍낙유, 정내백, 채홍원, 정이수, 유사모, 이조원, 정동관, 조석중, 서준보, 구득로, 정문시 등 13명이 더 있었다. 정조는 각 암행어사에게 다음과 같은 유시를 내렸다.

"수령의 잘잘못을 규찰하고 백성의 괴로움을 살피는 것이 어사의 직임이다. 어사가 비단옷을 입는 것은 그 은총을 드러내는 것이요, 도끼를 지니는 것은 그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다. 근래 각 도에 보낸 사람들이 그 직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데 어찌 그 사람들만을 책망할 수 있겠는가. 조정이 사람을 제대로 뽑지 못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 만약 그들이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하여 파견하지 않는다면 내가 구중궁궐에서 어떻게 민정을 살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천 리나 되는 경기 지방에 흉년이 든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너희들은 맡은 바 직분을 삼가 관부와 시장, 촌락을 드나들며 세세히 조사해 조정에 돌아올 때에 일일이 조목별로 나열해 올리도록 하라. 도장과 장부를 혀장에서 잡은 경우가 아니면 혹시라도 경솔하게 먼저 창고를 봉하지 말라." (정조 실록 18년 11월 16일)

Posted by 무명초 :

알집, 알씨, 알FTP 등 개인용 무료 소프트웨어로 20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거느리고 있는 이스트소프트(http://www.estsoft.com)가 의 알툴즈(http://www.altools.co.kr) 시리즈로 무료 PC 백신 소프트웨어 ‘알약(http://www.alyac.co.kr) ’을 마침내 공개했다.

▲ 8일 마침내 일반에 공개된 무료 백신 '알약' 시험판 동작 화면 / 서명덕 기자

이번에 발표된 ‘알약 1.0 시험판’은 지난달 29일 언론에 처음 정보가 공개된 후 테스트 참여를 신청한 사용자에게 공개한 것이다. 당초 1000여명에 제한적으로 배포할 계획이었지만, 사용자들의 문의가 쇄도하면서 신청자 2만5000명에게 모두 배포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배포는 8일과 9일 이틀 동안에 걸쳐 e메일로 전송했다.


[참고 정보] - 알툴즈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altools/150023871145


[내려 받기] - 알약 1.0 시험판
http://altools.qcdn.kr/altools/ALYac10beta.exe


이번에 출시된 제품은 바이러스 및 악성코드의 실행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치료하는 '실시간 감시 기능'과 백신 엔진정보를 최신 상태로 유지해 주는 '자동 업데이트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시스템 정리’ 기능을 통해 불필요한 파일 정리 등 시스템 최적화를 할 수 있는 기능도 함께 제공한다.


김명섭 이스트소프트 전략마케팅 팀장은 9일 조선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제품에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11월 말 출시할 예정”이라며 “좀 더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개인이 사용하는 유료 제품에 못지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알약은 루마니아 안티 바이러스 업체 소프트윈의 '비트디펜더(BitDefender)'라는 엔진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지난 2004년 국내 진출한 뒤 일부 국내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이 백신 엔진을 채택했다.


“왜 ‘비트디펜더’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타사의 백신 엔진을 우리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비트디펜더는 인지도가 높고, 실제 여러 제품과 비교 테스트를 해 보니 성능이 좋았다”며 “해외 백신 성장 테스트 자료에서도 카스퍼스키 등 유명 백신 엔진과 함께 상위를 기록할 정도로 품질이 좋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NHN)는 카스퍼스키 엔진을 탑재한 무료 백신 ‘PC그린’을 배포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보안 업계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한발 물러선 바 있다. 당시 국내 보안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는 “네이버가 포털이라는 영향력으로 보안 시장 질서를 교란 시킨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같은 소프트웨어 업계에 있는 경쟁사가 실시간 감시까지 완벽하게 지원되는 백신을 개인에게 ‘무료’로 제공하게 되면서, 시장 경쟁 구도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게 됐다. ‘제2의 백신 파동’으로 불러도 될 만한 상황이다.


“안철수연구소 등 백신 업체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았는가”는 질문에 김명섭 팀장은 “V3 압축파일 검사 모듈을 알집에서 빌려 사용하는 등 상호 모듈 교환관계일 정도로 안랩과 관계는 이전부터 유지하고 있었다”며 “특별히 반응은 없었으며, 어떤 소프트웨어가 나올지 궁금해 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인 백신 및 개인 보안시장은 무료가 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기본 방침”이라며 “해외에서도 트랜드마이크로가 중국서 광고모델 기반 무료백신을 배포하고 있고, 미국 AOL 등도 무료로 백신을 배포하는 등 개인 사용자 시장에서는 무료백신이 대세”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이러한 무료 백신들이 국내에서 들어오지 말란 법은 없다”며 “무료 백신 시장을 선점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개인 유료 백신들이 라이선스를 지나치게 관리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무료 백신을 사용하다 엔진 업데이트 시기를 놓치며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가짜 백신(그레이웨어)들만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체불명의 백신들이 ‘가짜 바이러스 유료 치료’를 내세우며 사용자들을 현혹하는 일이 점차 급증하는 상황이다. 그는 “개인 사용자들에게는 애초에 매출을 올릴 생각이 없다”며 “기업이나 관공서를 대상으로 수익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알집이나 알씨 등 기존 알툴즈 소프트웨어와 라이선스 방침은 동일하다. 개인 사용자는 제한 없이 알약의 모든 기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기업이나 공공기관, 교육기관, PC방에서는 기존의 알집, 알씨 라이선스 정책과 동일하게 라이선스를 구매한 후 사용할 수 있다.


알약을 체험한 사용자들은 대부분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백신 성능, 그리고 리소스 점유율 등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실제로 주요 커뮤니티나 블로거들은 이미 “무료 제품 치곤 알약의 성능이 만족스러워, 유료 백신의 계약을 연장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매우 환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백신 시장에 처음 발을 내딛는 이스트소프트가 어느 정도 성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료 사용을 원하는 사용자들의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한번 바뀐 분위기를 다시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안 소프트웨어 후발주자로서 '백신 무료' 전략이 국내에서 확고한 사업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입력 : 2007.11.10 12:36 / 수정 : 2007.11.10 12:40

출처 : 조선닷컴
Posted by 무명초 :

시작이다.

2007. 11. 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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