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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6 [펌]별순검의 세계, 별순검의 시대 1

죽음은 언제나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특히 억울하게 죽은 자의 시체는 산 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누군가 이 말을 들어야 한다.
누가 죽였는가. 왜 죽었는가. 어떻게 죽었는가. 그렇다면 이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MBC드라마넷과 MBC every1 채널에서 방영 중인 <별순검>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별순검>의 탄생과 현재

설 특집으로 방송됐던 <추리다큐 별순검>(왼쪽)과 현재의 <별순검>.


사실 <별순검>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 교양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팀에 속한 황혜령 작가의 아이디어를
김흥동, 이승영 PD가 수용한 것이 2005년 <추리다큐 별순검>의 시초였다.
 ‘개편을 맞아 독특하고 재미있는 코너’를 위해 작성된 이 기획안은 같은 해 MBC의 가을 개편을 앞두고
파일럿으로 제작되어 추석특집극으로 방영되었고, 이후 김흥동, 김병수 감독의 공동연출로
<추리다큐 별순검>이라는 제목으로 정규 편성되었지만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2006년 1월 <추리다큐 별순검>은 설 특집 2부작 단막극으로 제작되어 방영되었고
2007년 10월 13일, 2년 전의 제작진들이 거의 그대로 모인 드라마 <별순검>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MBC를 떠나 프리랜서로 옐로우엔터테인먼트에서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연출한 김흥동 감독을 제외한 제작진들-이승영, 김병수 감독과 황혜령, 양진아 작가의 라인업에 정윤정 작가가 추가된 <별순검>의 핵심 제작진-이 구성된 것은 2007년 초였다.


새롭게 시작된 <별순검>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는 드물게 해외의 시즌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프로그램으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런 형식적인 변화는 <추리다큐 별순검>이 드라마타이즈드 프로그램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당시 예능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형식을 고의로 삽입하며 표현의 한계를 경험한 제작진들로서는
드라마로 정체성이 바뀐 <별순검>을 통해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수사물이라는 장르 정체성과 케이블 채널의 자체제작 드라마라는 특성이야말로 <별순검>을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그 어떤 것의 아류도 아니다, <별순검>이 획득한 고유한 세계

19세기 초반, 급변하는 조선의 모습 또한 <별순검>에 오롯이 담겨있다.


<별순검>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다.
시대적으로는 19세기 초반, 한반도가 국제 정세에 휘말리기 직전의 시대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아관파천으로 어수선한 정국 아래 있던 시기였다.
서양의 문물이 급속도로 들이닥치며 체제와 제도에 근대적인 변화가 위아래에서 벌어지던,
그야말로 격동적인 힘이 이쪽 저쪽에서 터져 나오던 시대가 바로 <별순검>의 무대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사료가 없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야 말로 한국사의 ‘잃어버린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순검>은 바로 그 ‘잃어버린 시간’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풍속도이기도 하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 드라마이기도 하며, 동시에 살인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외래 문물과 전통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치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 덕분에 한 상인의 죽음 이면에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전기에 의한 근대적 살인도 가능하고, 백정과 평민 사이의 계급적 갈등을 보여주거나 당시 여성들이 겪은 시대적 비극의 묘사도 가능해졌다.
이런 특징이야말로 <별순검>이 획득한 고유한 세계다.

<별순검>은 <CSI>를 연상케하지만 조선이라는 시간에 알맞게 변용시켜 또다른 재미를 준다.


같은 맥락으로 <별순검>은 미국의 <CSI>를 가장 한국적으로 훌륭하게 벤치마킹한 작품이다.
특히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별순검은 <CSI>와 많은 유사함을 가지며
강승조(류승룡) 대장을 그리섬 반장과 비교하거나, 여진(박효주)을 캐서린이나 새라와 비교하게 만들지만,
이보다 중요한 미덕은 이런 분명한 캐릭터들이 감정이 아닌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조선 시대 법의학서인 <신주무원록>을 통해 제시되는 검증 사례들은 <CSI>의 현대적인 과학수사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사극’이라는 한계 안에서 경이로움마저 던져준다.
고초반응으로부터 루미놀 기법을 연상시키는 순간, 시청자들은 <별순검>이 <CSI>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극복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시간적 배경이 현대에서 근대로 이동하며 <별순검>은 <CSI>보다 다층적인 구성이 가능해졌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별순검>이 어떻게 <CSI>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점이다.


<별순검>이 상징하는 한국 방송환경의 변화


최근 MBC 프로덕션은 <별순검>의 다음 시즌 제작을 결정했다.
계획대로라면 <별순검>은 2008년 여름에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바로 공중파가 아니라 케이블 제작 환경에서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시즌2를 자연스럽게 선보인 tvN의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별순검>의 다음 시즌 제작 결정은 그 시장성을 검증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케이블 환경은 시청률 1%에 목을 매는 치열한 생존의 이전투구장이지만, 동시에 공중파보다는 상대적으로 제작과 편성에 자유로울 수 있다.
<별순검> 역시 케이블 채널, 그것도 MBC 프로덕션이라는 공중파 채널에 기반한 케이블 채널의 자체 제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은 셈이다.
일단 표현의 수위 자체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각종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별순검>으로서는 보다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편성의 강박증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유연성은 <별순검>의 회당 러닝타임을 70분 안팎으로 만들어 개연성과 반전이라는 장르적 특징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별순검>은 현재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다.
이 드라마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로, 2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열성적인 팬들과 제작진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2005년에 내외적으로 거부당했던 장르적 감수성을 2007년의 방송환경은 수용할 준비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순검>의 성과는 현재 한국 케이블 TV의 환경이 1년, 혹은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시장과 환경의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지금의 시청자들은 한국의 TV 방송이 가장 다이나믹하게 분화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별순검>이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환경적 조건들 이전에 <별순검>이 가진 드라마적 완성도를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라도 탄탄하게 짜여진 좋은 이야기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별순검>의 가장 큰 미덕이자 성과다.


☞ 이어지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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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우진 lazicat@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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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명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