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합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그루터기 :: 조선시대의 놀라운 기술력-장영실의 첨단 물시계 ‘자격루’ 복원

장영실 물시계 573년 만에 돌렸다 [중앙일보]
남문현 건국대 교수 `복원 23년` 결실
물통 제자리 찾는 연구만 15년 걸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건국대 남문현(65.전기공학) 교수는 21일 한복을 차려 입고 서울 세종로 고궁박물관에 나타났다. 조선시대 표준시계인 보루각(報漏閣) 자격루(自擊漏)를 20년이 넘는 연구 끝에 복원해 시연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날 남 교수가 이끄는 건국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완성한 자격루 복원품을 공개했다. 길이와 높이가 각 6m에 너비가 2m로 박물관 지하 전시실 한 방을 채우는 거대한 규모다.

물이 고였다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쇠구슬을 굴려 인형들이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게 한 당시 원리에 따라 복원된 자격루는 이날 오전 11시 작동을 시작했다.


남 교수가 자격루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4년, 미국 버클리대 지도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동제어장치 전공자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제어장치에 관심 가질 만하지 않나요"라고 그는 되물었다.

문헌 자료는 '세종실록' 65권 보루각기. 하지만 설계도도 없는 2000자짜리 문서만으로 원리를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표현도 모호했다. 자동 시보장치를 움직이는 두 가지 구슬의 규격이 중요한데 문헌엔 그저 "작은 것은 탄알만 하고 큰 구슬은 계란만 하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남 교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토종닭의 달걀 크기 측정이었다. 또 당대의 물시계들을 보러 중국.일본 등지로 숱하게 다녔다.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은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 세종 16년(1434) 장영실이 만든 것을 중종 31년(1536) 개량한 것이다. 현재 물받이 원통과 물통만 남아 있다. 창경궁에 있던 것을 1911년 무렵 일본인 학자들이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배열이 엉망이 됐다. 이 물통의 제자리를 찾는 연구에만 15년이 걸렸다.

"알고 있는 현대적 원리의 회로를 지우고, 거꾸로 더듬어 올라가면서 옛날 방식의 기계 논리를 체득했습니다."

97년이 돼서야 문화재청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 설계 작업이 시작됐다.

 2004년 12월부터 1년간 제작에 들어갔다. 전통 단청장, 유기장, 옻칠장 등 무형문화재급 장인과 기계공학자 등 '선수' 32명으로 팀을 꾸렸다. 10여 년간 연구한 설계도는 재현 과정에서 무수히 변경됐다. 이렇게 해서 2005년 12월, 자격루 1차 복원에 성공했다.

남은 것은 정밀도를 높이는 일. 물시계가 정확히 작동하려면 물 관리가 필수다. 조선시대에도 자격루 옆에 난방장치를 뒀을 정도로 항온 항습에 주의했다.

내년 2월 정년 퇴임하는 노학자의 집념은 그침이 없다.

"이번에 복원한 보루각 자격루 외에 자격루는 하나 더 있었습니다. 흠경각 자격루입니다. 이 복원도 끝나야 비로소 자격루를 완전히 복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격루(自擊漏)=물이 고이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는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됐다. 세종 16년(1434) 장영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라비아식 자동 시보장치를 물시계와 결합한 보루각 자격루를 만들었다.

쥐.소 등 12지신상이 두 시간마다 창 밖으로 나와 시간을 알린다. 밤에는 또 다른 인형이 나와 북과 징을 울렸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현재 남아 있는 자격루(국보 제 229호)의 일부분은 중종 31년(1536) 설치돼 1895년까지 표준시계로 사용되던 것이다.


권근영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최첨단 기술로도 23년 걸렸다”…자격루 복원한 남문현교수
입력: 2007년 11월 21일 18:37:50
 

“꼭 23년 걸렸군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1984년이었다. 자동제어가 전공인 남문현 건국대 교수(65)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동제어 기술이 당연히 있을 줄 믿고 ‘스스로 자(自)자’가 들어간 기록과 유물에 관심을 가졌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자격루(自擊漏)였다. 남문현 교수는 그때부터 1434년 조선 세종의 지시로 장영실이 발명한 자격루 복원에 매진했고 만든 지 573년 만인 20일, 완전복원에 성공했다.

 자격루는 물시계이면서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표준시계. 한국과학사의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자격루의 기본원리는 동아시아 전통의 유압식 물시계와 크고 작은 구슬을 이용한 아라비아식의 자격장치가 조합된 시스템이에요.

장영실은 중국 및 아라비아 시계 기술을 접목,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사이버 시스템을 발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시계였던 셈이죠.”

하지만 장영실의 자격루는 소실됐고, 현존하는 자격루(국보 229호)는 1536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그것도 1만원권에 도안된 자격루는 물항아리 등 일부 부품뿐이다.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토대로 철저한 고증작업을 펼쳤는데, 이번 복원작업에 모두 30여명의 내로라하는 학자 및 장인들과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됐어요.

 그러니 570여년 전인 조선초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자격루는 물시계(아날로그)의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를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조선초에 이미 빼어난 자동제어시스템을 구축한 것인데, 만약 쇠구슬의 크기가 1㎜만 달라도 제대로 된 시간을 측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현전했던 자격루의 물시계 항아리 배열방식이 일본학자들에 의해 크게 잘못됐는데, 이번 복원과정에서 바로잡았습니다. 대파수호-중파수호-소파수호 순(1열3단)으로….”

자격루에는 백성을 끔찍하게 여겼던 세종의 경천애민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은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면 중벌을 면치 못하니 장영실에게 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세종실록 보루각기)는 기록에서 임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자격루는 12지시(十二支時·2시간)마다 종이 한번씩 울리면서 동시에 그 시에 해당하는 십이지신 인형이 시간을 알리고(시기·時機), 밤(오후 7시부터 새벽 3시 무렵)까지는 북과 징을 울리도록(경점시보기구) 설계됐다.


자격루의 시보신호는 광화문을 거쳐 운종가 종루로 전해져서 인정과 파루시각을 알리는 데 사용됐다.

 남교수는 “자동시보인형이 주는 신비감과 경외감 또한 대단했을 것”이라면서 “신묘한 재주를 지닌 왕실이라는 관념도 심어주었으니 통치의 도구로도 활용된 셈”이라고 전했다.

〈글 이기환 선임기자·사진 박재찬기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무명초 :